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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슬픔을 아는 사람

2. 취미생활/- 책

by 새치미밍 2024. 8.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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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매일 시를 쓰면 좋겠다는 욕심은 갖지 말도록 하자. 어느 날은 쓸 수 있고 어느 날은 쓸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쓸 수 없는 날에는 남의 좋은 것을 보도록 하자. 무엇이 좋은지 또 무엇이 나쁜지 분별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도 좋은 것을 만들자. 부디 그렇게 하자. 다시는 그렇게나 오래 잠들지 말자.

 

나는 나에게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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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시쯤 나는 닌빈역 앞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 기사는 나를 처음 만났던 카페에 내려주었다. 또 한 시간이 남았네. 아침에 마셨던 기가 막히게 맛있는 커피를 주문했다. 가기 전까지 커피나 계속 마셔야지.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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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아닌 소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동경한다. 고작 마음 때문에 루틴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을 동경한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에 세상을 통찰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타인의 슬픔을 제 것으로 가지는 사람을 동경한다. 

 

언젠가 내가 다시 온다면 이들이 지금처럼 커피를 팔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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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노이에 도착해서 반나절을 걷다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은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느 일 때문에 육 년을 시달리며 살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때문에 수천만 원을 들여가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일에 매달렸다니.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나? 수천만 원의 돈을 들일 만큼 내게 중요한 일이었나?

 

.

 

삶이 기다리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삶이 경험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함하는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인간은 나이가 들고 육체가 쇠락하고 병들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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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슬픔은 충만한 사랑을 알아본다. 사랑을 먹고 자란 슬픔은 이내 충만해진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옳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은 중요하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무례하지 않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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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오직 걷고 보고 먹고 쓰는 것이라는 사실이 행복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침대 위를 뒹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냥 걷고 보고 먹는 일이 기왕이면 더욱 좋다는 것을.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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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인화하면 내가 속했던 순간의 한 조각을 가질 수 있다. 이 순간들은, 사진은, 나보다 이 땅에 오래 남을 것이다. 사진의 위안은 이것이다. 

 

 

 

수필을 읽을 때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니 그 보다는 조금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노이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 공간에 같이 있는 듯했고 슬픔을 아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슬픔은 사랑을 먹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늠해 본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공감이라는 단어와는 묘하게 다르다. 

 

내가 겪지 않은 슬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병맥주가 생각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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