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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 취미생활/- 책

by 새치미밍 2024. 8. 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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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9년 2학기, 구 년 전 그때 난 스물일곱의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이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녀의 말이 내게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갖지 말라는 충고로 들렸다. 그런 식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미성숙한 것인지 왜 모르느냐는 채근으로 들렸다.  나는 내가 그런 어린애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녀의 말에 그다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은 참사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대신, 그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내는 목소리에 '자신'만이 가득차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포함한 채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년」

 

겉으로야 같은 입사 동기지만 다 형식적인 거고, 우린 걔네 후배로 생각 안 해. 그러니까 걱정 마요.

 

예전이었다면 김상무의 그런 말에 억지로라도 웃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녀는 분명 안도했고, 그런 식으로라도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그에게 진근감을 느꼈다. 차별하는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게 한 그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거울에서 그녀가 본 건 기쁨과 안도가 스민 진짜 웃음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추한 가능성을 알아보았는지도 몰랐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자기 자신조차 설득할 수 없었다. 

 

그때의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다희에게 말하지 못했다.

 

.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따끔거릴 뿐. 

 

다희씨랑은 말이 잘 통해서 친해졌어요. 아, 다희씨 없는데서 다희씨 이야기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따라붙을 질문이 귀찮고, 어색해질 공기가 두려워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녀가 망설이는 동안 자동차가 마지막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날 그녀는 다희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 

 

다희의 상처를 자기 관점으로 다희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다희와 함께 출근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둘은 그날 일을 입에 오릴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떤 것처럼 웃으며 대화했다. 그것이 그녀는 슬펐는데, 다희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모에게」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느꼈던 내 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내가 거듭해서 이모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결국 비슷한 주름을 얼굴에 새기면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만 늘려가는 인간이 될까봐, 자기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얕잡아 보는 편협하고 어두운 인간이 될까봐 겁이 났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마에 떨어진 차가운 눈송이가 곧 물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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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를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언제나 이모를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모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모의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들을 만지면서 나는 그것 또한 나의 모습임을 인정했다. 그러한 판단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도.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나이가 들고 성숙해진다는 건 그저 자신의 환경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는 뜻인지도 몰랐따. 기남은 낯선 그곳에 앉은 채 자신이 여전히 미숙하고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남은 아홉 살 아이의 마음이 되었다. 아홉 살 아이처럼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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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진의 아빠가 이모를 대하는 태도에는 늘 옅은 무시가 깔려 있거나, 아홉 살 시절부터 식모 일을 해왔던 '기남'을 향해 식구들이 좀처럼 경멸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상황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과 그 보살핌에 응답하는 행위를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여길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이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다른 이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몫」

 

정윤이 희영의 말을 끊었다.

 

여성 문제요? 본인이 돌아가신 분과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건 오만한 생각 아닌가. 너무 다른 입장 아닌가. 희영은 그런 삶을 경험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 삶에 대해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희영이 그렇게 가난해본 적 있어요? 몸을 팔아야 할 만큼? 대학 교육까지 받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신발 신으면서 희영이 같은 여자랍시고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당신은 정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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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희영은 읽고 쓴느 일이 자기 확인이나 자기만족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인물이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자신의 몫을 했다고 믿고 스스로가 정의롭다는 느낌에 갇힌 채 살아가는 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희영의 말은 기자가 된 해진을 내내 붙든다.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 지난한 과정이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의미 역시 휘발되어버리기 쉽다고 전한다. 

 

해진은 자신이 섣부른 확신을 하며 성찰하지 않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희영의 태도를 경유해 돌아본다. 

 

 

 

 

어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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