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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 굿 이브닝, 펭귄

2. 취미생활/- 책

by 새치미밍 2018. 4. 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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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바지 속에 강아지가 있었어?"

강아지라면 진작 꺼내서 같이 놀았지. 말할 줄 아는 강아지라니. 그것도 영어를, 이게 무슨 개소린가. 여자아이에게 펭귄의 말이 혹시 개소리로 들렸나. 펭귄을 꺼내 인사시켜야 하나 고민했지만, 나도 펭귄이 낯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기분이었다. 두 분 서로 인사하시죠, 저도 이분을 엊그제 처음 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대로 펭귄을 숨기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걔가 손을 뻗어 펭귄을 꺼내려고 했다. 강아지를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였다.


슈퍼마켓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웃었따.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뭔가 사고를 쳤다는 것은 느꼈다. 얼굴이 화끈했고, 맞았다는 것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잘못했으니까 맞았지. 맞았으면 뭔가 잘못했지. 아빠는 천천히 담배를 연달아 세 대를 태우고 나서야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와라."


천안행 기차를 탔다. 천안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수학여행 때 항상 가던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있었지만, 그게 천안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천안은 다만 호두과자였고, 호두과자는 다만 천안이었다. 천안에 내리자마자 호두과자를 한 봉지 샀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호두과자 안에 있는 호두조각을 거의 다 셀 무렵 수진이가 한 시간 정도 늦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정직하고 착실하게 돈까스집을 운영했지만 편법과 비겁을 튀겨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별짓을 다 해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들인 힘에 미해 매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망할 판이었다. 


습관처럼 하면 하고, 멈추면 영원히 멈추게 되니까.


소설은 꿈과 비슷하다. 꿈을 꾸는 나와 꿈속 주인공이 같은 사람은 아니다. 같다면 견딜 수 없다. 그러나 꿈속 인물들은 꿈을 꾸는 사람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꿈이 무엇인지 답하기는 어렵다. 즐거운 꿈은 좋지만 슬픈 꿈도 필요하다. 가끔이라면 악몽도 도움이 된다. 꿈 한 번 꾸지 안혹 숙면하는 사람이 부럽지만, 조금도 꿈을 꾸지 않는다면 심심할 것이다. 꿈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꾼 꿈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깨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꿈을 잃어버린다. 점심 먹을 때쯤이면 꿈을 꿨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남아 있는 어떤 꿈은 있다.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나러 천안으로 간다는 부분에 이끌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책 표지에 쓰여있는 글을 먼저 읽고 어떤 내용의 책인지 미리 확인한 후에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표지에 아무것도 없었다. 첫 장을 다섯 번 정도 읽었다.

'이게 무슨 내용이지?' 하고 다시 첫 장을 읽고, 넘겼다가 첫 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고.

글자를 읽으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읽고 나니 펭귄을 알아챘다.


소설이지만 작가의 10대, 20대의 삶을 그대로 쓴 것 같았다. 주인공은 펭귄과 10대, 20대를 함께하며 2차 성징을 겪는 과정뿐만 아니라 1990년 대 후반 -한국의 IMF 외환위기로 인한 부모님의 모습, 팽배했던 남성 위주의 사회, 청년실업, 최저임금, 아르바이트와 같은 시대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의 별반 차이는 없지만 달리진 게 있다면 지금의 나는 정책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책임감을 어느 정도 가지려고 하는 청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펭귄과 작별 인사를 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펭귄과 교감하는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썼는데 너무 상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읽는데 속이 불편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했다.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꿈 이야기를 한다.

분명하진 않지만 깨고 나면 기억날 듯 말 듯 희미한 꿈처럼 그러나 간혹 남아 있는 꿈, 어렸을 때 모두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그때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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